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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글로리]연진아, 내 글좀 봐줘

by 꿀영구 2025. 2. 15.

출처:Netflix

소개

학교폭력은 자주 등장하는 화두이고
피해자분들의 글들을 읽어보면
가장 상처를 많이 받는 말, 그리고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너는 아무 잘못이 없어?'라는 말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어, 나는 아무 잘못이 없어', '네, 아무 잘못 없습니다'를
사명처럼 이해시켜야 되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_작가 김은숙


문동은: [안개]
미혼모의 딸로 태어나 가난했으므로 모진 학교 폭력을 당한 동은.
웃음을 잃었고 영혼은 가루처럼 부서졌다.
죽기 좋은 날씨여서 죽으러 갔었다.
그날 동은을 살린 건 어쩌면 안개였다.
짙은 농무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축축한 옷 속에서 팔과 다리의 흉들이 가려웠다.
날을 잘못 골랐다고 울다가 그런 스스로가 너무 불쌍해서, 외려 웃고 말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왜 나만 죽어야 하지?
용서는 없다.
그 누구도 천국에 들지 못하겠지만.

주여정: [난동(煖冬)]
온실 속의 화초란 말은 아마도 여정을 두고 만든 말일지도 모른다.
싱그럽게 웃고 때때로 하늘거리며 달콤한 향기를 가졌다.
평생이 난동(煖冬)이라 밖이 그리 추운지 몰랐던 여정은
악몽 같은 사건을 겪고 난 후 지독한 겨울을 버텨내고 있었다.
그리고
동은의 팔과 다리의 흉을 보고 여정은 결심한다.
동은의 왕자님이 아닌 칼춤을 추는 망나니가 되기로.
그래서 손에 든 메스를 조금 다르게 써 보기로 한다.
원래의 계절에 맞게 이제부터 아주 차가워질 작정이다.

박연진: [백야]
태어나 보니 세상은 이미 연진의 편이었다.
하물며 끔찍한 학교폭력을 저지르고도 부모의 비뚤어진 자식 사랑 덕에
잘못에 대해 반성하려는 그 어떤 노력조차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연진은 일생이 백야였다.
하지만 연진은 알지 못했다.
백야가 있는 동안 그 반대의 반구에서는
극야(極夜)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걸.
극야(極夜)의 시간을 견딘 동은이
연진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오는 중이란 걸.

강현남: [너울]
처음엔 내 잘못인 줄 알았다. 사람들도 그렇다고 했다.
참으면 되는 줄 알았다.
버티면 나아질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현남은 결심했다.
너울이 무서운 이유는
예측이 어렵고 파고가 낮아지는 물결이라
잔물결도 없이 잠잠하다 일순간에 모든 걸 삼켜버리기 때문이다.
어쩐지 문동은이란 저 여자가 그 방법이 될 것 같다.

하도영: [바둑판]
도영에게 삶은 바둑판처럼 선명했다.
아군과 적군. 내 식구와 남의 식구. 예스 아니면 노.
흐릿한 것이 끼어들 수 없는 흑과 백의 세상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안개처럼 흐릿한 한 여자가 자꾸만 궁금해지더니,
급기야 태양을 따라 도는 해바라기처럼 그 여자를 쫓고 있었다.
도영은 안다.
인생에서도 대국에서도, 백보단 흑이 유리하단 걸.
평생 흑만 잡아 왔었는데 지금 도영은 백을 잡고 있다.

전재준: [갑]
가는 곳마다 눈에 띄고, 눈에 띄는 모든 순간 ‘갑’으로 살고 있는 재준.
술 아니면 여자, 여자 아니면 도박, 도박 아니면 폭행으로
변호사와 만나는 시간이 더 많지만
그렇게 살아도 부는 매일매일 쌓여간다.
그런 재준이 미치도록 가지고 싶은 것이 생겼다.
그것이 동은이 계획한 덫이라는 것을 알지만 멈추기에는 이미 늦어 버렸다.

 

출처:Netflix

감상평

<더 글로리>는 보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던, 마지막으로 갈 수 록 복수에 대한 통쾌함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애초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했던 작품이다.  

'학교폭력' 이 단어는 너무나 잔인하다.  학교라는 누구라도 보호받아야 할 울타리 안에서 일어나는 폭력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학교라는 모두가 평등해야 하는 곳에서 일어나는 잔인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 잔인한 일은 너무나 단순하게 괴롭힐 수 있는 존재 이기 때문에 일어난다. 너는 나를 괴롭힐 수 있고, 나는 너의 괴롭힘을 받을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일어난다. <더 글로리>의 동은(송혜교)이 그렇다. 편부모 슬하에서 그마저도 보호받지 못하고 자랐다. 아무리 혼자 아등바등해도 벗어날 수 없었다. 어린 동은을 보호해 주는 그 누구도 없었다. 그러다가 딱 한 명 간호선생님을 만났다.  딱 한 명 있었던 동은 인생의 진짜 어른도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다. 학교라는 곳이 동은에게 더 이상의 의미가 없어져 가고 집이라는 안식처도 이제 더 이상 피난처가 되지 못할 때 어린 동은은 떠났다. 몸과 마음에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가득 안고 연진패거리의 손이 닿지 않을 곳으로 떠나 버렸다. 어린 동은이 너무나 가엽고 안타까웠다. 도움을 주고 싶은데 내 옆에 있는 친구였다면 나는 도와줄 수 있었을까, 선생님마저도 전근시켜버리고 혹시나 타깃이 내가 되지 않을까, 연진 패거리가 무서워서 방임하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내가 너무 비겁하게 느껴졌다. 연진(임지연)이에게 세상은 너무나 쉬운 것  같다. 학교 생활도, 부모도 심지어는 사회생활도 돈이면 안되는 것이 없다. 어쩌면 연진이를 이렇게 만든 건 엄마의 삐뚤어진 돈이면 다 되는 가르침 때문이 아니었을까? 너무도 못된 연진이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라는 생각을 시작함과 동시에 동은이의 복수가 시작된다. 

머리가 좋아서 혼자 공부해서 교대까지 갔으면 선생님 되서 잘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으면 남은 인생을 걸고 이런 복수를 준비 할수 있었을까. 어쨌든 점점 최종화로 갈수록 동은의 복수는 통쾌하다. 하지만 계속 이런 일이 없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은 계속 머릿속에 머물고 있었다. 

안 당해본 사람은 모른다. 그러니 함부로 위로하려 하지 말 것, 그리고 함부로 대하지 말 것. 그 누구도 이런 일을 해서도, 당해서도 안된다. 이런 불행한 일이 더 이상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본다.